이명훈 회장

우리 포장인은 소중하다.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가장 가치 있는 일이란 무엇인가? 존재를 드러내지 않고 묵묵하게 그리고 꾸준히 인간 생활을 풍요롭게, 세상을 좀 더 아름답게 하는 일이 가장 가치 있는 일 중의 하나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포장은 물과 산소이다. 평소 의식하고 살지는 않지만, 물과 산소가 없이는 생명 유지가 불가능하듯이 포장 없는 세상도 상상하기 어렵다. 흔한 것 같지만 물과 산소가 생명의 근원이 되고 있듯이, 상품에 있어서 포장은 의식되지 않는 너무나 소중한 존재이다. 이러한 존재를 다루는 우리의 소중함은 당연하다.

우리 포장인은 스스로의 소중함을 아는가? 대부분의 경우 대답은 “아니오”이다. 이 분야에 종사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않는 포장인들이 의외로 많다. “껍데기”를 다룬다는 자괴심이 생각보다는 크게 자리 잡고 있는 듯 하다. 무엇 때문에 우리 포장인은 스스로의 소중함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가? 물과 산소와 같은 포장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인 듯 하다.

포장분야 주요 단체 대표자 회동 가져

포장의 본질은 무엇인가? 1차적인 해답은 당연히 내용물 보호에 있다. 하지만 오늘날 포장은 가치를 창출하고 문화를 창조하며 시대정신을 이끌어 나가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요청에 의해 몇 가지 중요한 임무를 부여받고 있다.

환경 지킴이, 물류비 절감의 총아, 전자상거래의 핵심인 신뢰성 확보 제공자 등으로 불리면서 근래 가장 뜨거운 3대 이슈인 환경, 물류, IT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이들 분야는 여러 가지 문제를 포장분야에 요구하고 있으나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 상황이다.

그렇다면 우리 포장분야의 현 상황은 어떠한가? 안타깝게도, 발전을 위한 절호의 기회를 맞이하고 있음에도 시대상황을 거꾸로 읽고 비관적인 생각에 빠져 있는 듯 하다. 이 대목에서 최근에 벌어진 일들을 중심으로 우리 포장산업을 조명해보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를 분석해 보도록 하자.

지난 5월 포장업계 전체를 아우르는 대표단체로서 (가칭)포장산업연합회의 출범을 위한 추진위원회가 조직되어 활동을 해 오던 중, 9월 21일 강남 팔레스 호텔에서 포장협회, 골판지조합 등 포장분야 주요 12개 단체의 대표자 회동이 있었다.

이 자리에서는 국내 포장산업 발전을 위해서는 연합회의 설립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데에 의견을 모으고 각 단체장들이 앞장서기로 하였다. 최종적인 결실이 맺어지기까지는 아직 몇 단계의 과정이 필요하겠지만 커다란 진전을 위한 첫걸음을 뗀 것만은 분명하다.

돌이켜보면, 우리 포장산업은 지난 30여 년간 부침을 거듭하여 왔으며 여러 우여곡절을 겪었다. 1970년에 설립된 「한국디자인포장센터」는 디자인·포장 진흥법을 뒷받침으로 하여 국가적인 지원을 받으며 포장분야의 창구역할을 하였다.

비교적 순탄하게 성장하던 포장산업은 1996년도 디자인·포장진흥법에서 포장이 삭제되면서부터 침체기를 맞게 되었다. 포장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한 일부 관련 당국자들에 의해 저질러진 일이지만 포장산업계에서도 별다른 이의 제기가 없었다. 이후, 디자인 분야가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 하에 화려하게 부상한 반면 포장은 관심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되었던 것이다.

선진국은 포장산업을 국가 전략산업으로 분류

포장은 제품의 일부분으로서 제품과 운명을 함께하는 특성 때문에 자체적인 힘만으로는 대폭적인 성장을 기대하기 힘들다. 세계 주요 선진국들도 포장산업은 국가 전략산업으로 분류하여 체계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이러한 연유로 그들의 포장산업 종사자들은 우리와는 달리 대단히 높은 자부심을 가지고 있고 생활수준도 높은 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한참 중요한 시기에 포장분야의 침체는 관련된 타 산업에 악영향을 미치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포장분야의 발전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자연스럽게 커지게 되었다.

구체적으로는,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환경친화적인 포장재료 혹은 포장기법의 개발이 중요해지고 물류비 절감을 위한 물류표준화 추진에 포장표준화가 선결과제라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다. 또한 신뢰성 확보가 가장 중요한 요건인 전자상거래에 있어서 포장은 상품의 유통과정에서 문제 발생시 책임소재를 규명해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외부로부터의 요구는 정부 당국자들의 포장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 일환으로, 포장산업을 담당하는 산업자원부의 관계당국자가 1990년대 말부터 체계적인 지원을 위하여 통합 창구 마련을 강력하게 촉구하였다. 2000년대 초반까지 이어진 당국자의 노력은 대상단체들의 이견으로 결국 실패로 돌아가게 되었으며 국가적인 정책 지원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후유증은 고스란히 포장산업계에 돌아갈 수밖에 없었는데, 기술개발의 저조는 중국, 동남아 등의 저가 포장재의 대폭 유입과 원료가의 대폭적인 인상을 포장재 판매가에 전가시키지 못하는 이중의 고통을 겪게 되었다.

또한 포장 폐기물에 대한 대폭적인 환경부담금 인상과 4대 중금속 용출 규제 등에 대한 무대책 등도 포장산업을 옥죄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2005년도에 터진 포장기술지도 비리사건은 포장분야의 설자리가 별로 없게 만들었다. 한마디로 근래 국내 포장산업은 사면초가 상태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포장산업계는 각자에게 닥친 코앞의 문제 해결에만 급급할 뿐 힘을 합해 공동으로 대응하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문제점을 심각하게 인식한 정부 당국자가 오랜 방치를 청산하고 올 초에 단일 창구 마련을 조건으로 적극적인 지원의 손길을 먼저 내밀었는데도 내부 이견으로 인해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이에 실망한 정부 당국에서는, 산하기관에 포장지원 조직을 설치하고 나름대로 포장산업에 대한 지원을 준비하고 있다. 정부의 이러한 노력은 포장산업의 사정이 얼마나 다급하고 열악한가 하는 점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증표라고 할 수 있는데 우리 포장산업은 아직까지도 스스로의 병세를 정확하게 모르는 것 같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가 포장산업에 지원을 하게 되면 업계간의 갈등이 크게 불거질 것이며 이는 결국 총체적인 포장산업의 부실과 침체로 이어질 것이 불문가지이다.

포장산업연합회 출범 반드시 성공해야

이러한 측면에서 9. 21 포장 단체장 회동은 만시지탄(晩時之歎)의 감은 있으나 매우 뜻 깊은 일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현재 우리 포장산업계는 25개 내외의 생산자 단체와 5~6개의 기술인 단체 등 대략 30여 개의 포장관련 단체가 있다. 현재는 생산자단체와 기술인단체를 가리지 않고 모두 어려운 처지에 있다. 따라서 9.21 모임에서 지적되었듯이, 누가 어떠한 목적으로 주도하였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또한 정부 지원요청 문제에 자존심을 들먹거릴 때도 아니라고 본다.

분명한 사실은, 흑묘백묘론(黑猫白描論)을 빌지 않더라도 우리 포장산업계의 어려움을 타개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무슨 일이라도 다해야 할 것이다. 대의명분 보다는 눈앞의 실리가 중요하다는 일부 업계의 의견도 옳다. 각자 눈앞의 실리를 총합해서 우선순위를 정하고 이해관계를 교통 정리하여 공동 대응해 나간다면 결국 실리와 명분의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도 있을 것으로 본다.

결국 우리의 바램이 하나의 테두리 안에 녹아들어 큰 힘으로 결집된다면 분명히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기회가 계속 주어지는 것은 아니니까 포장산업연합회 출범은 반드시 성공하여야 한다. 우리 포장인 모두가 포장산업연합회 출범을 주시하고 잘 되어나갈 수 있도록 끊임없이 독려해주기 바란다. 우리 포장인의 소중함을 우리 스스로가 지켜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