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신림동 대학가 원룸이 밀집한 주택가 골목. 쓰레기 봉투 더미가 이리저리 널브러져 있다. 규격 봉투가 아닌 일반 비닐 봉투에 음식물 쓰레기며 플라스틱 용기들까지 한꺼번에 쑤셔 넣은 봉지들이 종량제 봉투와 구분 없이 섞여있다.

골목 안을 가득 메우는 악취는 쓰레기들이 방치된 지 한참 시간이 흘렀음을 짐작케 한다. 담벼락에 붙어있는 ‘이곳에 쓰레기를 버리지 마시오’라는 문구가 무색할 지경. 담당 미화원은 골목이 떠나갈 듯 욕설을 퍼부으며 쓰레기 봉투들을 청소차에 싣는다. 차마 말을 붙이기도 어려운 분위기 속에 기자는 “뭐가 잘못 됐습니까?”라고 말을 건넸다.

“쓰레기 내놓는 장소에다가 쓰레기 봉투에 차곡차곡 넣어서, 새지 않게 꼭 묶어서 버려야지. 이렇게 후미진 골목 어귀에다가 아무렇게나 쑤셔넣고 도망가는 악질들이 있어요. 자기네 집 안방도 이렇게 만들까 몰라. 쓰레기 파파라치를 한다고 해도 도무지 소용이 없어. 사람들 양심이 썩었어도 이렇게까지 썩을 수가 있나?“

미화원은 다시 한번 고성의 욕설을 내뱉은 뒤, 어지럽게 널려있는 쓰레기들 속에 쓰레기 종량제 봉투만을 골라내 차에 실었다. 허리가 반쯤 뜯어져 나간 종량제 봉투와 일반 비닐 봉투에 담겨진 쓰레기들은 그냥 내버려 둔 채 그곳을 떠났다. 청소차가 다녀 간 후 얼추 깨끗해진 골목이지만 남겨진 쓰레기들 위에 다시 ‘불량’ 쓰레기들이 쌓이고 머지않아 벌레와 악취가 다시 골목을 가득 메우게 될 것이 뻔하다.

“어차피 다시 분리하는 쓰레기, 공들여 분리수거 할 필요있나”

주택가 골목에 비하면 인근의 아파트 단지는 훨씬 쾌적하다. 캔류, 병류, 종이, 고철, 플라스틱 등 분리 수거 품목이 적혀진 쓰레기 분리 수거함이 질서정연하게 마련되어 있고, 박스나 종이 등의 재활용품은 공터에 차곡차곡 모아져 아파트 부녀회에서 한꺼번에 재활용 업자에게 넘긴다.

그러나 이것으로 분리수거가 종료되는 것은 아니다. 페트 병 속에 남아있는 음료수, 플라스틱 용기에 남아있는 잔여 음식 찌꺼기, 캔 속에 버려진 담배 꽁초와 담뱃재들. 재활용 쓰레기에 섞인 이물질을 구분하는 것은 여전히 미화원들의 몫으로 남아있다.

아파트 주민 정모(여, 30)씨는 “분리 수거를 잘 하는 주민들이 많은데도 일부 주민들이 이물질을 섞어 넣는 바람에 미화원들이 다시 한번 쏟아서 분리 작업을 한다고 들었다”며 “그 얘기를 듣고 나서는 어차피 쏟아서 다시 분리하는 거 일일이 번거롭게 분리해서 버릴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어 재활용 쓰레기들을 품목대로 분리하지 않고 대충 넣게 된다”고 말했다.

서울시 관악구청 청소과 김명운 반장은 “일반 주택가에 비해 아파트 단지에서는 깡통, 고철, 병, 플라스틱, 종이 등 5종으로 분리수거가 잘 되고 있다. 하지만 사실상 분리수거는 수십 가지 품목에 걸쳐 이뤄지기 때문에 미화원과 전문 분리 요원들의 손을 거쳐야 한다”고 설명했다.

재활용품을 분리하는 과정이 워낙 복잡하고 종류가 다양하다 보니 일반인들이 전문적인 지식을 갖추고 세분화해 분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물론 일반 가정에서부터 제대로 분리수거가 이뤄질 경우 많은 일손을 덜 수 있다. 그러나 정확한 분리 수거와 재활용 처리를 위해서는 별도의 ‘수동 분리 작업’과 ‘자동공정시스템’을 거쳐야 한다.

”´필름류’가 무엇인가요?” … 분리 방법도 홍보 안돼

“라면 봉지도 재활용이 된다고요?” 주부 김혜경(51)씨는 종량제 봉투에 라면 봉지와 과자 봉지들을 쑤셔 넣다가 “라면 봉지도 분리수거 대상”이라는 기자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반문했다.

2004년 1월부터 라면 봉지와 리필용 세제 포장지 등 봉지 비닐류도 재활용 품목에 포함됐지만 아직 홍보가 충분하지 않아 대부분의 주민들은 일반 쓰레기와 함께 처리하고 있다.

생산자 책임 재활용 제도(EPR, Extended Producer Responsibility)는 재활용이 가능한 폐기물의 일정량 이상을 재활용하도록 생산자 측에 의무를 부여하는 제도. 생산자가 재활용을 하지 않을 경우 실제 재활용과 폐기처리에 소요되는 비용을 생산자에게 징수한다. 지난해 도입된 EPR 제도에 따라 현재 타이어, 윤활유, 전자제품, 종이팩, 유리병, 형광등, 일부 비닐류 포장지 등 16개 품목이 분리 수거 대상으로 지정돼있다.

내년부터는 휴대폰과 MP3 등 통신 및 오디오 기기의 재활용도 생산자가 책임을 지게 돼 별도로 분리 수거된다. 그러나 분리 수거 규정이 복잡한데다 대주민 홍보와 교육이 미미해 분리수거를 담당하는 각 자치단체들의 부담은 여전한 실정이다.

”재활용 할 수 없는 것들은 어떻게 하란 말인가”

관악구에서 나오는 재활용 쓰레기 처리를 담당하는 ㈜동하자원. 10억원을 투자해 설비한 자동화시스템이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이곳에서 하루 처리하는 용량은 40~50톤 정도. 선진화된 재활용설비를 갖춘 이곳에서 쓰레기가 분리되는 과정은 이렇다.

우선 10여명의 직원들이 종이는 종이대로, 비닐은 비닐대로, 플라스틱은 플라스틱 대로 분리해 각각의 컨베이어 벨트에 옮겨놓는다. 통조림이나 캔 등 고철류는 거대한 자석이 달린 분리용 기계가 내뿜는 자력에 휘말려 자동으로 걸러진다.

이렇게 분류된 재활용 쓰레기들은 녹이거나 압축해 부피를 줄이는 1차 가공을 거친 뒤 재생업체에 넘겨진다. 각 재생업체를 통해 스티로폼은 연료로, 종이와 플라스틱, 유리, 고철 등은 새로운 제품을 만드는 자원으로 재활용된다.

이처럼 많은 노력과 복잡한 과정을 거쳐 재활용된 자원들이지만, 고철 1톤 값은 고작 200-300원 정도. 스티로폼은 톤당 몇십원에 불과하다. 재활용에 투자된 설비와 비용, 시간 등을 감안하면 배보다 배꼽이 훨씬 더 큰 셈이다. 이 때문에 재활용업체의 수입은 거의 전부 위탁계약을 맺은 구청에서 지급하는 처리비로부터 나온다. 국민이 내는 세금 중 상당한 액수가 자원재활용에 투자되고 있는 것이다.

쉽지 않은 재활용, 그래도 해야한다

자원 재활용이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자원 재활용의 중요성은 계속해서 강조되고 있고, 재활용의 폭도 갈수록 넓어지고 있다. 쓰레기들을 소각하거나 매장할 경우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과 그로부터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이 더 크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처럼 만만찮은 노력과 비용이 투자되고 있음에도, 재생가능한 쓰레기 중 상당부분은 여전히 소각장으로 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는 재활용할 준비가 되지 않은 독특한 제품들을 생산자들이 쏟아내기 때문이다.

예컨대, 같은 스티로폼이라 해도 종이가 섞여있는 스티로폼이나, 나일론이 덧씌워진 갈색 페트병 맥주 용기 등은 소각되거나 처리방법을 찾지 못해 방치된다. 이물질을 걸러낼 설비가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재활용이 불가능한 품목은 수십 가지. 재활용업체로 들어왔다가 다시 소각장으로 향하는 쓰레기의 양이 이 한곳만 해도 한 달에 300~400톤에 이른다.

관악구청 청소과 김명운 반장은 “화학적 원리로만 보자면 여기 오는 모든 쓰레기들은 재활용이 가능한 것들이지만, 이물질을 걸러내기가 불가능해 소각되는 쓰레기들이 전체의 30% 정도”라고 말했다.

이 같은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선, 아직 재활용할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은 제품의 생산은 별도의 시스템이 마련될 때까지 정부가 규제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환경부는 이 같은 문제에 대해 부랴부랴 대책마련에 나서고 있지만 근본적인 제도상의 문제점은 산적해 있다.

(미디어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