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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색등과 게슈탈트 하이어라키(Gestalt Hierarchy)
홍익대학교 산업미술대학원 김득수 교수
[기획] 포장이 브랜드다!

화살표이지만 ‘(빨간색이니까) 가지 말고 서시오’라고 하는 신호등 때문에 말이 많다. 그런 신호등이 포함된 삼색등이 글로벌 스탠더드란다. 중앙일보 칼럼에 보니 맨해튼에 그런 게 있으니까 그걸 보고 글로벌 스탠더드라고 한 것인데, 정작 맨해튼 사람들도 삼색신호등이 왜 글로벌스탠더드인지 궁금해 한단다. 그곳에는 일방통행이 많아서 신호라기보다는 우회전 좌회전 금지 안내 표지판으로 이용한다고 한다. 맨해튼에서 한다고 했지만 그 외의 모든 지역에서 하지 않는 방식이면, 그리고 여러 국가의 예를 들었지만, 대다수의 국가에서 시행하지 않는 방식이라면,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글로벌 스탠더드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공청회 한 번 없이 광화문을 비롯하여 오십 몇 군데에 설치했다고 한다. 조현오 경찰청장은 “국민의 거부감이 상당히 큰 것 같다. 좋은 정책이지만 많은 국민이 선입견을 갖고 있어 극복할 수 없는 한계에 봉착했기 때문에 더는 할 수 없다”고 했다. 말투에 옹이가 박혀 있으니 사과도 배도 아니다. 사고가 잇따랐지만 경찰은 신호등 때문이 아니라고 한다. 이 정부는 뭐든지 저질러 놓고 이해 못하는 쪽은 언제나 국민들 편이다.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은 오늘 부로 사망자가 20명이 된, 4대강 사업현장 19명의 사망도 개인의 실수라고 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4대강을 갖고 이러쿵저러쿵 하시는 분도 많지만 금년 가을 완공된 모습을 보게 되면 모두가 수긍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국민들 말씀을 쿵쿵이라니. 국민을 졸로 보는 말투다.

흥분하면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진다. 삼색등으로 돌아가자. 말이 삼색등이지 실제로는 육색등이다. 기존의 사색등을 삼색등으로 바꾸고 삼색등을 추가로 또 다는 것이다. 이것이 현실화 될 때 그 비용은 엄청날 것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처남이 신호등업자여서 자고 나면 신호등이 하나씩 생기더라는 기억이 떠올랐지만 이것도 각설하고.

신호의 기능은 신속성, 정확성, 단일성이 생명이다.

영국의 ‘럿보로’라는 곳에서 한국인 유학생이 자동차로 인사사고를 냈다. 한국에서는 교차로에서 상향등을 깜박거리는 신호는 ‘너 거기 가만있어. 내가 먼저 간다’라는 신호다. 영국에서는 정 반대다. ‘먼저 가십시오. 제가 양보합니다’라는 신호다. 상향등을 깜박이며 가속을 내어 직진하던 한국인 차에 영국인이 치었다. 신호는 기호에 속하고, 기호는 문화에 속한다. 이기적이고 공격적인 문화와 양보와 타협의 문화가 충돌한 것인데 그 개연성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신호는 수신자와 발신자간의 합의가 전제되어야 하는데 삼색등은 그 합의를 끌어내지 못한다. 기호는 다른 무엇이 어떤 무엇을 대신하는 것이다. 기호는 기표(記表)와 기의(記意)로 구성되어 있다. 파란색 화살표는 가라는 의미를 대신하는 기표이고, 가는 동작은 그에 따른 의미로서 기의에 해당된다. 교통신호등처럼 빠르고 정확한 커뮤니케이션을 하기 위하여 기호를 단순화시킨 것이 신호다. 커뮤니케이션의 신속성, 정확성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하여 다른 신호요소들과 혼동되지 않는 단일성이 생명이다.

우선, 삼색신호등의 빨간색 화살표는 커뮤니케이션의 신속성에 문제가 있다. 예를 들어보자. John Stroop이 고안하고 스트룹효과(stroop effect)로 일컬어진 실험인데, 그림의 각 단어의 색깔을 죽 읽어보자. 글자를 읽지 않고 색깔을 말해보는 과제다.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번에는 다른 또 하나의 그림을 보고 단어들의 색을 순서대로 말해 보자. 아 잠깐, 단어를 읽지 말고 단어의 색깔을 말하는 과제다. 이번에는 쉽지 않다. 이를 응용한 동물 이름 말하기 과제에서도 같은 현상이 나타난다. 이는 언어중추와 시각중추를 연결하는 회로의 스위치 역할을 하는 시냅스(synapse, 뇌신경 단위들을 연결해주는 면접부위)가 전류의 흐름을 연결해 주느냐 끊느냐의 차이다. 어떤 자극(firing)을 받아 활동을 시작한 뇌신경들은 화학물질의 이온(ion)화 활동에 따라 전위가 발생하고, 이 전류의 흐름이 생각을 만들고 행동을 만든다. 생각의 시작과 끝, 확장과 전환을 가능하게 하는 스위치 역할을 시냅스가 한다.


삼색등의 경우, 녹색의 화살표는 화살 형태와 색깔이 합쳐져 스트룹 일치성효과(stroop congruity effect)를 만들어낸다. 형태와 색깔을 인식하는 각각의 시각피질 부위가 스위치로 쉽게 연결되는 것이다. 녹색등은 관습화된 신호로서 ‘가시오’이고 화살표는 동작과 방향을 지시하는 자연기호로 두 정보가 서로 보완되어 정보처리의 촉진효과가 생기는 것이다. 하지만 빨간색과 화살표는 서로 스트룹 간섭효과(stroop interference effect)를 만든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려고 하는 자극(화살표)이 처리하려고 하는 정보(빨간색)가 방해를 받는 것이다.

스트룹 현상은 패키징디자인에서도 일어난다. ‘스키틀즈’, ‘스니커즈’, ‘스팸’, ‘킷캣’ 등 잘 알고 있는 브랜드명에 대한 명명이 주의를 기울이려고 하지 않는 이름들에 의하여 방해를 받는다. 이때에 형태나 로고, 컬러 등이 독특할수록, 또는 익숙할수록 그 간섭효과가 덜 일어난다. 그런데 문제의 신호는 방해하는 화살표 형태가 색깔에 대하여 상대적으로 독특하고 익숙하다. ‘그 방향으로’라는 방향을 가리키는 정체적 지시성과 ‘가시오’라는 동작을 요구하는 지시성이라는 두 가지 의미의 강한 자극(간섭)이 ‘서시오’의 빨간색을 압도하는 것이다. 이는 기호를 해석하는 시간을 지체할 뿐 아니라, 커뮤니케이션의 정확성과 대표성에도 영향을 미친다.


전체는 부분의 합과 다르다.

[Source : Treisman (1986)]
두 번째는 정확성이다. 화살표는 화살을 본뜬 도상기호다. 대상과 닮은 자연기호를 억제하는 것은 정확성에도 문제를 만든다. 그림은 우리가 사물의 비주얼 요소들을 어떻게 기억하고 지각하는가를 보기 위한 장치인데, 양쪽의 숫자들은 피 실험자가 그림의 내용에 집중하는 것을 방해하기 위한 트릭이다. 중간의 먹색 패턴은 그림을 순간 노출시키기 위한 마스크다. 두 그룹으로 나누어서 한 실험인데, 한 그룹에 대해서는 위쪽의 그림을 당근, 호수, 타이어라고 일러주고, 다른 한 그룹에 대해서는 빨간색 삼각형, 파란색 타원형, 검은색 링으로 일러주었다. 그 결과, 전자의 그룹에서는 맨 밑의 초록색 삼각형이나 빨간 타원처럼 색깔과 형태가 잘못 결합된 것을 쉽게 발견하는 것이었다. 이 실험 결과는 ‘전체는 부분의 합계와 다르다(The whole is greater than the sum of its parts)’는 형태심리학 게슈탈트(Gestalt) 명제의 검증에서 유효하다. 전체는 각각의 독립적인 가치를 가진 감각요소들의 집합이 아니라, 분리될 수 없는 통합된 감각의 결과물이라는 뜻이다.

녹색 화살표의 경우, 형태와 컬러라는 두 가지 요소의 합은 좌회전(우회전) 의미 이상의 ‘가십시오. 당신 차례입니다. 권리가 주어졌습니다. 화살표가 지시하는 동안 안심하십시오. 다른 차들이 대기하고 있는 중입니다. 서두르십시오’ 등 방향제시, 상황제시, 권유, 지시 등의 여러 의미가 확장된 기호의 관념이 만들어진다. 반면에 빨간색 화살표는 초록색 당근이나 붉은색 호수처럼 부분의 독립적인 가치를 가질 뿐 통합된 전체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게슈탈트 하이어라키(Gestalt Hierarchy)

세 번째로 기의에 대한 기표의 대표성 문제인데, 비주얼 기호에서는 시각적 독특성 혹은 차별성이라고 달리 말할 수 있다. 사물을 인식할 때에는 뇌에 입력되는 비주얼 요소들의 우선순위(Visual Hierarchy)가 있다. 독특한 시각적 요소들이 먼저 입력되고, 뒤따라오는 나머지 요소들은 사물을 정확하게 인식하도록 가이드 역할을 한다. 움직임, 컬러, 형태, 깊이, 그래픽의 모양 등 동시에 여러 개의 자극 요소들이 눈을 통하여 전기화학적 에너지 전달방식으로 뇌의 시각피질에 도달한다. 이 시각적 요소들을 처리하는 시각피질의 부위는 각각 다르다. 이것들은 특정한 뇌신경 세포를 발화시키며, 여러 개의 동시병렬처리 채널(회로)을 통하여 메시지를 처리하는데 그 결합의 강도가 모두 다르다.

빨간색 화살표의 경우, 화살이라는 형태차원이 빨강이라는 컬러차원에 대하여 우위에 있다. 그러니까 차더러 서라는 의미보다 화살표 방향으로 가라는 지시의 의미가 더 빨리, 더 강하게 활성화되는 것이다. 녹색 화살표는 형태에 대하여 색이 가이드로서 기호의 의미를 보완하지만, 빨간색 화살표의 경우 형태가 먼저 활성화됨으로써 의미의 교란을 일으킨다.

다시 패키징을 가지고 예를 들어보자. 패키징의 색깔이나 로고, 형태, 재료의 질감. 그래픽 요소들은 단순한 개별적인 요소가 아니고 그것들이 조직화된 전체로 하나의 브랜드를 형성한다.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다’는 의미는 조직화된 전체는 각 요소의 결합이 더하기가 아닌 곱하기의 관계라는 말이다. 패키지의 비주얼 요소의 가치가 각각 십일 때, 그 합이 이십이 아니고 백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 요소 하나가 영이 되었을 때에 전체가 영이 될 수도 있다.
그림처럼 끈 풀린 ‘맛동산’, 우유팩 속의 ‘프링글스’, 파우치 속의 ‘토블론’ 등은 우리를 낯설게 한다. ‘프링글스’의 튜브는 콧수염의 그래픽 요소보다는 ‘프링글스’ 브랜드를 규정짓는 강한 비주얼 단서(Cue driver)가 됨을 보여준다. 피라미드 형태와 긴 삼각 바가 결합하는 ‘토블론’에서는, 피라미드 형태 못지않게 중요한 브랜드 인지 단서인 길이(바)라는 차원이 깨짐으로써 전혀 다른 상품이 되어버린다.

필자가 패키징으로 검증한 비주얼 우선순위는 형태→그래픽→로고→컬러의 순서다. 흔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컬러는 결합의 우선순위에서는 가장 덜 중요한 요소다. ‘바나나맛우유’나 ‘딸기맛우유’는 항아리 모양을 브랜드로 먼저 인식하고 바나나맛과 딸기맛을 구분한다. ‘프링글스’의 맛은 어니언스는 초록색이고, 오리지널은 빨간색이지만 패키징의 튜브에 의하여 일단 ‘프링글스’를 먼저 인식한다. 마찬가지로, 빨간색 화살표의 경우는 가라는 동작의 의미인 형태가 서라는 컬러의 의미에 우선한다고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화살표 신호등을 보고 지시하는 쪽으로 동작하지 말자고 약속한다면, 이는 기존 기호체계의 해체를 의미한다. 이를 탈(脫) 기호라 한다. 기호의 자의성(필연성 없음)을 들어 탈 기호화하여 새로운 수준에서 다시 기호를 정립하자면, 그것은 이론적으로 가능하다. 처음에 파란불이 가시오가 되고 빨간불이 서시오가 될 필연성은 없었으니까. 그러나 우리는 이미 녹색 화살표를 기호로서 쓰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기존의 기호관계는 새로운 기호의 내용에 의하여 교란되거나, 새로운 기호가 기존의 기호관계에 의해 교란된다. 스트룹 간섭효과에서 수동적으로 읽혀지는 글자를 애써 무시해야하는 것처럼 화살표신호에 근질거리는 손과 발을 억제해야 한다. 스트룹 간섭효과에서는 일정시간이 지나고 나면 간섭을 억제하는 노력 없이 그 과제를 수행하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이 간섭효과의 작업 수행에 익숙해지고 나서 다시 스트룹 일치효과 작업 수행모드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간섭효과 수행 시의 억제모드를 풀어야 한다. 따라서 풀고 억제하는 교차과정에서 교란이 생길 수밖에 없다. 빨간색 화살표와 녹색 화살표가 나란히 있으니까 말이다.

TV에서 보니까 빨간색 화살표를 90퍼센트의 사람들이 서라는 신호로 받아들이지 않고 긴급 좌회전 혹은 긴급 우회전으로 받아들이더라고 열을 올린 사람이 있었다. 맞는 말이다. 빨간색은 우리에게 피, 흥분, 긴급, 결사 등의 기표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우리가 빨간색 화살표를 가지 말고 서시오라는 새로운 기호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고풍스러운 고딕 건축물 첨탑의 풍향계를 보듯 사유하는 기호로 받아들여야 한다. 풍향계에서 화살촉이 가리키는 방향은 바람이 가는 방향이 아니고 바람을 거스르는 방향이다. 기호의 대상은 정해져 있으나 해석의 사유가 열려있는 낯선 기호는 신호가 될 수가 없다.

낯설게 하기는 예술의 한 기법이다. 사람인지 물고기인지. 신발인지 발인지. 가라는 것인지 가지 말라는 것인지. 난해하기가 르네 마그리트의 예술의 경지다. 작업자도 고개를 갸우뚱 한다.



References
김경용 (2007) 기호학이란 무엇인가, 서울, 민음사
고석주 옮김, 로이 헤리스 지음 (1999) 소쉬르와 비트겐슈타인의 언어, 서울, 보고사
TREISMAN, A. (1986) Features and objects in visual processing, Scientific American, 255 (5), PP. 97-110.


[2011-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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