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마켓과 백화점 진열대에서 자신을 선택해 달라고 화려한 자태를 뽐내던 상품들의 모델쇼 분위기가 곧 달라질 전망이다. 상품의 가치를 한층 돋보이게 해주었던 다양한 포장재가 국내외 환경규제들로 인해 환경친화적 방향으로의 전환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포장은 본래 상품의 운반, 보관, 배달 등의 유통단계에서 작업을 용이하게 하는 편의성과 그 과정에서 제품을 보존하는 보호성, 그리고 제품의 특징을 부각시킴으로써 소비자의 시선을 사로잡아 구매케 하는 판촉성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요즘은 별로 내용 없는 상품에다 겉모양만 화려하게 꾸미는 판매전략의 분위기에 편승해서 과도한 포장과 이로 인한 엄청난 포장폐기물이 양산되고 있는 실정이다. 환경을 고려할 때 과대포장으로 야기되는 포장폐기물의 급증은 끊임없는 상품소비로 유지되는 시장경제의 근본 속성과 맥을 같이한다는 점에서 심각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결국 시장경제가 지속가능한 경제를 유지하면서 발전해 가려면 상품의 겉옷이라 할 수 있는 포장재의 환경친화적 전환이 필수적인 것이다. 국민경제적으로 볼 때도, 판촉효과만을 노린 과대포장과 무분별한 포장용기 사용은 사회적으로 심각한 환경오염을 일으킬 뿐만 아니라 자원배분의 비효율성을 발생시킨다.

EU를 중심으로 포장폐기물 규제 강화

이와 같이 포장재로 인한 환경오염의 문제의식은 곧 자국의 환경규제 뿐만 아니라 국가간 무역에서도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EU의 경우, 포장폐기물의 감량과 재활용을 촉진하기 위해 94년 ‘포장 및 포장폐기물 지침’을 제정하여 회원국들은 2001년까지 포장폐기물의 50∼60%를 회수하고, 25∼45%는 재활용해야 하며, 재활용 가능한 품목들은 각 소재별로 최소한 15%를 감량시키도록 하였다.

또한 수출용 가전제품 포장재와 관련해 수은, 납 등 환경유해 요소를 함유하고 있는 소재사용을 금지했으며 발생되는 포장폐기물 총량의 50% 이상을 수거, 재생하고 25% 이상을 재활용해야 한다는 규정을 시행중이다.

미국, 스위스, 스웨덴, 이탈리아 등에서는 스티로폼 용기와 PVC 포장재의 사용을 제한하고 있으며 독일, 프랑스, 스웨덴 등은 제조, 유통, 수입업자가 소비후의 포장재를 책임지고 회수할 것을 규정한 이른바 ‘포괄적 생산자 책임주의(Extended Producer Responsibility)’를 시행하고 있다.

특히 독일은 포장법령에 의해 제조업자나 소매업자에게 회수 목표를 시기별로 각각 수송포장, 2차 포장, 판매포장의 3단계에 걸쳐 제시하여 큰 성과를 거두었다.

1단계는 제조업자와 판매업자들로 하여금 수송용 포장을 회수하도록 의무화하였고, 2단계는 소매업자들에게 광고용이나 도난방지용으로 판매포장 위에 추가된 2차포장을 회수하도록 하였다. 이때 소매점포는 판매장소 가까이에 수거 컨테이너를 설치해야 한다. 마지막 3단계는 소매점포가 판매지점에서 판매포장을 회수하도록 하였다.

정부, 생산자책임 강화 추세

우리나라의 포장폐기물은 90년 전체 폐기물 가운데 약 12.5%에 해당하는 383만 톤 정도였으나 95년 말에는 전체의 약 30%에 해당하는 590만 톤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음식물쓰레기량과 거의 맞먹는 수준이다. 폐기물 중에서도 특히 재활용이 용이한 종이 포장재 등은 연평균 증가율이 7% 수준이지만 재활용이 어려운 혼합재질의 포장물이나 비닐봉지 플라스틱 등은 연간 13∼15% 씩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는 점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포장폐기물의 증가는 상품소비로 유지되는 시장경제에서 심각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이미 93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촉진에 관한 법률’을 통해 제품의 포장공간 비율과 포장횟수 등이 규제되고 있지만 그 실효성이 의문시되고 있다. 현재 과대포장에 대한 단속은 각 지방자치단체가 유통과정에서 사후단속으로 시행하고 있으나 턱없이 적게 책정된 물품구입예산으로 실제 구입하여 검사하는데 많은 한계를 가지고 있는 데다 이에 대한 소비자들의 의식도 그다지 높지 않은 이유로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환경부가 포장용기를 재사용할 수 있도록 리필제품 생산을 권고하고 있지만 분말세제를 제외하고 는 제품의 고급화와 소비자가 외면한다는 이유로 기업들이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에 정부는 심각성을 더해가는 포장폐기물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올 5월부터 과대포장 일제 단속에 들어갔고, 제조업체가 포장폐기물을 소비자로부터 직접 수거해 재활용하도록 의무화하는 포장폐기물 관리법을 고안하는 중에 있다.

포장폐기물 관리법은 폐기물의 재활용을 높이기 위해 생활폐기물 수거창구를 이원화하여 시, 군, 구 등 지자체의 일반쓰레기 수거체제와는 별도로 제조업자가 통합 재활용 시스템을 운용하거나 용역을 담당할 지자체를 위해 비용을 부담하도록 하여 포장폐기물을 수거해야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할 예정이다.

따라서 포장폐기물 관리법이 도입되면 제조업자는 생산품의 포장폐기물 수거를 위해 자금을 출자, 운영회사를 공동설립해 재활용사업에 참여하든지 수거를 전담할 업체에 높은 처리비용을 납부하게 될 것이다.

그린기업, 포장폐기물 규제를 기회로 이용

이런 국제적, 국내적 상황 가운데 기업의 합리적 대응방안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몇가지 사례를 살펴보자. 영국의 보디숍(The Body Shop)은 전세계 47개국에 1500 여개의 지점을 둔 피부 및 모발용 화장품 회사이다. 창업자인 Anita Roddick은 창립 때부터 환경친화적인 상품과 포장정책을 고수해 왔다.

이를 반영하듯 보디숍의 향수나 로션, 샴푸를 담는 제품용기는 리필을 용이하게 위해 약병처럼 투박하고 단순한 디자인을 사용하고 있으며 향수를 산 고객에게도 그냥 재생비닐로 된 봉지에 상품을 넣어주고 있다.

또한 소비자들을 유혹하기 위한 화려한 광고를 피하고 ‘자연에 순응하는 건강미’라는 구호를 내걸고 식물성 원료를 중심으로 한 제품생산을 고집하고 있어 기존의 다른 화장품회사와 다른 길을 걷고 있다. 그럼에도 580 여종의 상품을 생산하고 있으며 지난 3월 결산회계 결과 전년도에 비해 매출액은 8%, 세전 순이익은 17.3% 성장하는 성과를 올렸다.

94년에는 캐나다 지사가 온타리오 리사이클링 위원회로부터 자원절약상을 받기도 하였으며 매년 연간 환경리포트를 발간함으로써 그린시대의 모범기업으로 성장하였다. 우리나라의 경우 최근 이런 추세에 맞추어 몇몇 기업이 환경친화형 포장재를 개발, 새로운 고객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한솔제지는 몇해전 재활용 방습포장지의 양산화에 성공하였다. 이로써 한솔은 재활용 방습포장지를 각종 종이류 포장, 산업용 포장재로 확산해 약 3백억원대의 폴리에틸렌 라미네이트 포장시장을 상당 부분 대체할 계획을 세웠다.

본격 양산체제에 들어간 이 포장지는 전 세계적으로 일본의 몇 개 기업만이 독점판매하고 있었으나 제조원가 절감으로 상당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삼성코닝에서도 브라운관 유리벌브의 포장재질을 환경친화적인 것으로 개선하고 무인 자동포장설비를 도입하였다. 기존 종이재질의 포장재가 강도가 약해 쉽게 손상된 데 반해 새로 개발된 포장재는 고강도 재질로 파손되는 일이 없고 반영구적으로 재활용할 수 있어 원가 절감에도 기여를 하였다.

또한 영세한 완충 포장재 전문업체인 서호산업은 주로 컴퓨터 키보드 덮개, 노트북 PC 완충재 등의 전자부품에 사용되는 PVC 포장재를 생산하였다.

그런데 PVC 포장재가 완충작용이 뛰어날 뿐 아니라 먼지를 방지할 수 있고 재활용이 손쉬운 소재를 사용하기 때문에 수출상품의 포장재로 스티로폼 대신 각광받게 되면서 성장의 가능성을 엿볼수 있게 되었다.

제품포장의 그린화 전략

기업의 포괄적 환경경영의 의지와 전략이 요구되며, 소비자들의 환경의식과 구매기준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상과 같이 살펴볼 때, 심각한 환경오염원으로 등장한 포장폐기물의 환경친화적 전환을 위해 필요한 대안과 정책은 크게 다음의 세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포괄적 생산자 책임주의에 입각해서 미래를 준비하는 기업의 포괄적 환경경영의 의지와 전략이 요구된다. 이것은 앞서 언급된 사례들과 같이 환경친화적인 포장재 개발과 디자인 단계부터 고려되는 제품의 전과정평가, 리필제품의 적극적 활용 등을 말한다. 환경규제의 위기를 전향적으로 대응해 가는 기업이 시장에서 경쟁우위를 확보하게 될 것이다.

둘째, 소비자들의 환경의식과 구매기준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것은 화장품 회사들이 과대포장에 열을 올리는 이유처럼 소비자들이 시각적으로 화려한 제품과 고급스런 이미지만을 선택할 경우 그 어떤 대안도 유명무실해지기 때문이다. 소박했던(?) 보디숍을 지금의 화려한(?) 보디숍으로 키운 것은 환경의 가치를 소중히 선택한 소비자들이다.

셋째, 포장재 산업과 포장재 수거체계에 대한 합리적인 정부의 투자와 정책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폐기물의 낮은 재활용율을 고려할 때, 경제적 인센티브의 적절한 활용을 통해 포장재 산업의 전문화를 유도하고 포장폐기물 수거체계에 대해 종합적이고 현실적인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 시급한 상황이다.

어쨌든 포장재로 인한 환경오염의 피해와 제품포장의 고급화를 겨냥한 판매전략 간의 커다란 씨름은 지속가능한 사회를 향한 전지구적 흐름 가운데 곧 현실화될 것이다.

결국 포장폐기물의 환경친화적 전환은 국내외에서 앞다투어 진행되고 있는 환경규제에 대한 기업의 대응일 뿐만 아니라 시장경제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첩경이다.

우리 제품들이 글로벌 환경시대에 걸 맞는 그린 옷을 입고, 두껍고 거추장스런 옷들은 과감히 벗어야 할 시점에 서 있다.

(자료 : LG경제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