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가다 보면 음식점, 술집들 이름이 엿가락처럼 길어지고 있다. 가공식품에서도 브랜드명 늘이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소화 잘되는 우유, 계란에 부쳐 먹으면 정말 맛있는 소시지, 자연은 365일 레드 오렌지, 목장의 신선함이 살아있는 우유, 미녀는 석류를 좋아해, 몸이 가벼워지는 시간 17차, 간편하게 만들어 맛있게 먹는 새콤달콤 초밥용 유부, 속풀이 해장국 컨디션면 등등.

‘바나나는 원래 하얗다’(이하 ‘바원하’로 줄임)도 유행에 끼어들었다. 광고까지 상식을 파괴하는 역발상으로 화제가 되고 있다. 코믹하지만 월급쟁이 아빠의 비애를 보여주어 가슴 찡하게 하는 사실성 있는 광고다.

“바나나가 원래 하얗다는 게 말이 됩니까?”
“원래 속은 하얗거든요”
“그래서 어쩌라고요, 안 팔리는 걸 어쩌라고요!”

M회사 BM(Brand Manager) 백부장은 상품기획 한 번 잘못했다가 윗사람한테 잘리고 싶으냐는 말까지 듣는다. 수모를 당하는 장면을 몰래카메라로 찍은 형식으로 제작한 광고다.

올해 초 인터넷과 극장을 통해 선보인 이 광고는 조회수 65만건을 기록하더니 3월에는 케이블 방송을 타고, 5월에는 마침내 공중파까지 입성했다고 한다. ‘잘릴래요’편 외에 딸이 학교에서 아버지를 두둔하는 학교편, 편의점 직원이 제품 진열 위치를 두고 백부장과 실랑이를 벌이는 편의점편까지 이어졌다.

패키징과 광고의 인지도에 변화 모형도

색소를 넣지 않았다는 것이 광고 컨셉에 있는 것 같아 얼핏 성공할 상품인 듯 보인다. 하지만 광고효과는 그림처럼 지속성이 없어 시간이 가면서 곧 잊히고 만다. 또 재미는 재미로서 끝난다.

반면에 포장은 그 자체로 훌륭한 광고이자 상품의 마켓 포지쇼닝 도구이다. 시간이 갈수록 인지도는 증가하며 게다가 돈이 들지 않는다. 30년이 넘은 항아리 형태의 포장은 광고 수 십 편 보다 더 훌륭한 광고효과를 낸다.

금붕어가 어항 속에서 사는 것을 견딜 수 있는 것은 기억력이 없기 때문이다. 금붕어는 장식용 수중식물을 발견하면 그것에 경탄을 하고 이내 잊어버린다. 그런 다음 유리벽에 부딪치고 돌아와서는 똑 같은 수중식물을 보고 다시 경탄한다. 결국 금붕어의 기억력이 약한 것은 미치지 않기 위한 생존전략인 셈이다(베르베르 2006).

동물들이 동면을 하는 것은 머리를 쓰면서 뺏기는 에너지를 아껴 배고픔을 이기기 위해서다. 우리도 미치지 않기 위해 머리를 경제적으로 쓴다. 정보를 단순화 시켜 받아들인다. 그래서 인간은 인지적인 구두쇠(Cognitive Miser, Cognitive Economy)로 일컬어진다.

우리가 흔히 브랜드명을 읽지 않고 디자인이 비슷한 짝퉁을 사고는 집에 와서 비로소 알아차리는 이유도 그래서다. 우리는 제품의 이미지 단서(Cue)를 읽는다. 우리가 4만가지 상품의 홍수 속을 헤집고 다닐 수 있는 수단이다.

캠브릿지 대학의 2005년도 패키징로드맵에 의하면 슈퍼마켓의 SKU(Stock Keeping Unit)는 2010년까지 6만까지 증가할 것으로 내다본다. 구매시점 충동구매 또는 비계획구매는 충동구매는 80퍼센트를 넘고 있고 날로 증가하고 있다. ‘바원하’는 광고 안에서만 그 의미를 가질 뿐 상품이미지 색깔이나 형태의 독특성이 없다.

경쟁상품 ‘빙그레 바나나맛 우유’(이하 빙바우)에서 ‘빙그레’를 빼보자. 왜냐고요? 요즘 촌스럽게 아무 의미도 없는 기업명을 브랜드로 쓰는 회사가 어디 있는가 더군다나 FMCG 회사에서. 이번엔 ‘바나나맛 우유’를 빼보자.

그건 또 왜? 그게 상품 설명하는 속성이지 어떻게 브랜드명이 되는가. 자, 이제 ‘빙바우’라는 브랜드명은 사라지고 없다. 그런데 ‘빙바우’는 거기에 그대로 있지 않은가. 마치 영구가 자기 눈 가리고 ‘영구 없~다’ 하는 듯 해서 심형래가 어떨 때 영구 없다고 하더라 하고 인터넷에 들어가 봤더니 난해한 대화가 오가는 중이다.

- ‘없다는 것’은 실존적 의미에서 그렇다는 것을 먼저 가정하고 있는 듯 한데요. 영구가 받아들이는 존재론적 가정들과 극 속에서의 구체적인 상황에 대한 명시가 있어야 합니다.
- 개별자로서의 개인을 강조한 것일진데, 즉 타인에게 이해되고 인식되는 본질로서의 영구가 없다는 것은 사르트르와 견해가 일치하는 것으로…
- 우선 실존이란 말은 사전에 의하면 구체적, 실질적으로 존재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그런데 발화자가 그 자신이 Nothing exist라고 말하기 때문에 Nothing이 존재하는 것이지요.
- 열반에 든 자만이 할 수 있는 말이지요. 사유하고 행동하는 근원이 되는 본질 즉, 나 자신을 부정하는 반 실존주의적 사상에 기초를 둔 초월한 자의 언어표현으로…

편의점에 가서 물어 보았다.
“요새 ‘바나나우유는 원래 하얗다’ 잘 나가요?”
“네, 잘나가요.”
“항아리 우유보다 잘 나가요?”
“아~니요. (항아리 우유하고는) 비교도 안되지요.”

브랜드의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는데 바로 Nothing이 Something이 되지 않는가?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개별자 항아리의 실존 말이다. 초월한 자의 언어표현이며 열반에 든 브랜드다.

친구하고 말장난이나 해보자.
나 : 하늘에서 내리는 눈 색깔은?
친구 : 흰색
나: A4용지의 색깔은?
친구 : 흰색.
나 : 젖소가 마시는 것은?
친구 : ( )

나 : 보크를 10번 말해봐.
친구 : 보크, 보크, 보크, 보크, 보크, 보크, 보크, 보크, 보크, 보크.
나 : 스프는 무엇으로 먹지?
친구 : ( )

괄호 안은 대개 우유와 포크가 들어간다. 그렇게 대답했다면 여러분의 뇌는 정상이다. 시냅스(Synapse, 뇌세포간의 신경전달물질)들의 연결로 이루어지는 연상작용이다. 젖소편은 색깔을 인지하는 뇌의 영역을 활성화 시켰기 때문에 그 쪽에서 얼른 답이 나오는 것이다.

보크편은 시냅스가 언어영역 - 시각(기억)영역 - 언어중추로 순간적으로 연결되면서 오답이 나오는 것이다. 인터넷 개그모음에서 퍼왔지만 원래 ‘뇌’라는 공상과학소설 속에 나오는 최면술 이야기이다. 최면술은 마술이 아니라 과학이다.

다음은 이미지 연상 놀이. ‘원숭이 똥구멍은 빨개 빨가면 사과 사과는 맛있어 맛있으면 바나나 바나나는 길어 길면 기차… ‘아이들은 못 속인다. 봐라, 사과 속은 하얗지만 사과는 빨갛다고 하지 않는가.

관련인지확산모형(Source: Collins and Loftus, 1975)(왼쪽), FMCG 브랜드 인지활성화 모델.(오른쪽)

위 그림의 왼쪽 인지확산모형은 빨강에서 시냅스들이 활성화를 통해서 관련연상들이 활성화 되는 것을 보여준다. 연상 이미지가 가장 강하고 가까운 곳에서 활성화되어 카테고리별로 확산된다.

그림의 빨강 원에 노랑을 대입하면 바로 사과자리에 바나나가 활성화 되지만 하양을 대입하면 가까이는 쌀죽이나 멀리는 앰뷸런스를 거쳐 병원이나 가운이 활성화 될 것이다. 바나나 껍질을 벗겨가며 하얀색을 연상하지는 않는다.

위 그림의 오른쪽은 슈퍼마켓에서 카테고리와 포장의 비주얼 단서에 의한 브랜드 활성화 모형이다. 슈퍼마켓에서 쇼핑을 하면서 특징이 있는 포장의 단서가 환경과 연결되어 경쟁상품보다 먼저 즉각적으로 브랜드 인지를 도와주는 것이다. 인지활성화 모형인지만 바로 각기 다른 영역에 속해있는 뇌 속 시냅스의 네트워크와 다름 아니다.

화가 보다는 생각하는 사람으로 불리기를 원했던 에셔의 ‘세개의 세계’라는 작품이다. 그는 이 그림에서 수면과 물 속 그리고 물 바깥세상이 거꾸로 거기에 비추고 있다고 말한다.

에셔의 ‘세개의 세계’

잉어는 물속에 있지만 물 밖으로 나와 전경화 된다. 실제로 앞으로 나와 있는 나뭇잎들은 배경화 된다. 현실세계에서 우리는 세 개의 세계를 구분하지 않고 단풍잎과 떡갈나무를 구분하지도 않고 물에 비친 나무도 상관하지 않고 지나친다.

우리가 쇼핑을 할 때도 여러 개의 세상이 존재한다. 우리가 쇼핑을 하면서 많은 시간을 상품과 무관한 딴 생각 또는 무의식의 세계에 있다가 상품을 발견하고 집어들 때의 의식 상태로 전환되기도 하고 간간이 세일하는 확성기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도 하며 눈에 띠는 상품에 시선을 주거나 친구와 슈퍼마켓 바깥세상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우리는 4만 가지 상품 중에 불과 몇 수십 개의 SKU를 유심히 보고 지나칠 뿐이다. 마치 연못 속의 잉어만 보고 배경은 그냥 지나치는 것처럼 의식의 경계를 자연스럽게 넘나들면서 쇼핑하는 것이다.

에셔의 또 하나의 그림을 보자 전경화와 배경화가 반복적으로 연속되는 길다란 그림에서 전경과 배경이 불분명한 부분을 잘랐다. 하지만 우리는 좀 더 의미화된 된 쪽을 전경화 시켜서 본다. 의미라 함은 구체화 되고 우리가 안다는 것을 뜻한다. 아는 만큼 본다. 알기 때문에 보이고 보이기 때문에 안다.

에셔의 그림 중에서

보이는 것, 아는 것은 전경화 된다. 진열대에서 ‘바원하’는 후경화 되고 ‘빙바우’는 전경화가 된다. 항아리가 브랜드이기 때문이다.

마케팅의 핵심은 브랜딩이다.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서는 포지쇼닝을 해야 하고 포지쇼닝을 하기 위해서는 차별화해야 한다. STP(Segmentation, Targeting, Positioning) 마케팅 전략은 포장의 STP전략과 일치한다.

상품이 소비자행동, 연령, 성별, 직업, 지역 등으로 소비대상을 세분하듯이 포장도 그 상품의 카테고리 안에서 포장의 방법이나 형태 재질 사용방식 등으로 세분화 해보자.

시장 크기와 자사의 프로덕트 믹스, 미래 성장성, 자사투자 능력과 영업, 마케팅 능력을 등을 고려하여 마켓 타게팅을 하듯 포장도 생산라인, 재료조달능력, 개발가능성, 재료비, 트렌드 등을 고려하여 세분된 포장설계를 적용하면 된다.

상품이 자사의 상품을 경쟁사와 차별화 시키는 것이 마케팅 성공여부를 결정하듯 포장도 차별화가 바로 포지쇼닝을 결정하는 요소가 된다. 볼보가 튼튼한 차로, BMW가 성능으로, 벤츠가 최고급으로 차별화 시켜 경쟁사에 대해서 포지쇼닝 하듯 FMCG에서는 포장의 차별화가 상품의 포지쇼닝의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한국 야쿠르트의 윌을 안마시면 당장 위암에라도 걸리는 듯이 기능성 요구르트로 포지쇼닝 하고 있다. 모든 요구르트는 원형이지만 야쿠르트만 약병처럼 4각으로 차별화 되어 있다. 백세주가 기존의 소주, 맥주, 양주 시장에서 틈새를 발견하고 건강기능주로 포지쇼닝 하면서 무광의 질감과 곡선이 있는 병으로 차별화 했다.

‘자이리톨’ 통은 기능성 껌으로, ‘카페라떼’는 포장 자체가 걸어 다니는 카페로, 스파우트 노즐이 달린 ‘설레임’은 해태 ‘탱크보이’가 슬러쉬 타입의 빙과로 어린이 시장을 독점하고 있었던 상품이었으나 포장이 타겟마켓을 어른이로 바꾸면서 새로운 시장을 만든 것이다.

포장 차별화가 차별화 마케팅이 되어버린 예이다. ‘빙바우’는 정통 흰우유에 대하여 비흰우유, 즉 향(맛)우유로 포지쇼닝 하기 위하여 테트라팩 일색의 포장에서 항아리 모양의 용기로 차별화한 것이다. 소 뒷다리가 개구리 잡듯 어쩌다가 결과가 좋으니 이런 이야기가 성립이 되는 상품도 있겠지만 지금부터라도 포장은 처음부터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하는 마케팅 믹스요소로서 4P에 이은 다섯 번째 P(Packaging)이다.

빙그레 바나나 우유(왼쪽), 바나나는 원래 하얗다(가운데), 테트라 팩을 적용한 바나나 우유(오른쪽)

재미난 이름들 한 번 더 찾아보자. ‘요리재미 쫄깃한 우동’. ‘참나무통 맑은 소주’, ‘햇살 담은 조림간장’, ‘간편하게 만들어 맛있게 먹는 새콤달콤 초밥용 유부’, ‘딸기가 입술을 만날 때’, ‘과수원을 통째로 얼려버린 엄마의 실수’.. 재미있다고는 하지만 기억하기 힘들다.

상품이름이 브랜드라고 생각한다면 브랜드 파괴시대라고 할만하다. 브랜드가 없으니 더욱이 비주얼 이미지가 브랜드가 되어야 한다. 역발상도 좋지만 ‘바원하’는 포장을 바꿔 흰우유 속에 파 묻혀 있지 말고 항아리 옆으로 이사 가야 한다.

‘빙바우’와 다를 것이 없는 Me-too 상품인데 포장은 복고풍의 서울우유 병유리(PET지만)를 따라가 버렸다. 진열에서도 향우유 카테고리 속에 들어가 있지 않고 요구르트와 흰우유 병 사이에 들어가 있다. 포장까지 Me-too로 가야 하지 않았을까 싶다. 아니면 사진의 테트라팩처럼 했으면 어떨까.

소비자의 시선은 알고 있는 대형브랜드에 머문다. PB(Private Brand, 유통업체 브랜드)가 자기 상품을 초대형 브랜드 오른쪽에(시선은 대개 왼쪽에서 오른 쪽으로 이동한다) 바짝 붙여 진열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럼, 바나나 속은 하얗지 하얗고말고) 소비자들은 불쌍한 백부장 편으로 마음이 기울 것이다.

약자를 응원하는 심리학의 귀인이론(Attribution theory)이다. 하지만 신선한 광고도 곧 식상해진다. 백부장은 그만 억지 쓰고 선생님과 점원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윗사람 말씀이 맞다. 쵸코우유는 쵸코색, 딸기우유는 딸기색, 흰우유는 흰색. 바나나는 원래 노랗다. 백부장은 빽구두를 신고 윗사람한테 더 깨져야 한다.

References
이세욱 옮김, 베르나르 베르베르(2006), “뇌” 열린책들, P. 5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