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 : 이제 한 번 생각해 보게. 미로가 그린 그림이나 그가 마요카 해변에서 주운 부유물이나 어차피 아름다운 사물이라는 점에선 동일하겠지?

아리스 : 그렇게 보면 그럴 수도 있겠지요.

플라톤 : 이제 ‘발견된 오브제’라는 생각이 나오게 된 이유를 알았나?

아리스 : 예술은 사물이 되고, 사물은 예술이 되고…?

플라톤 : 그렇지. 예술을 굳이 힘들게 할 필요가 없어. 예술은 길바닥에서 줍는거야.

이상은 진중권이 ‘미학 오디세이’(2007)에서 현대예술에서는 일상적 사물을 예술에 끌어들인다는 말을 하고자 한 대목이다. 여기에서 포장디자인도 아트에 속하는 것이니 예술의 자리에 브랜드를 대입해 보자.

훌륭한 브랜드는 예술에 가까우니 말이다. 그리고 포장은 당연히 사물이니 사물 자리에 포장을 넣어서 ‘브랜드는 포장이 되고, 포장은 브랜드가 되고’ 이렇게.. 그러면 플라톤은 ‘그렇지, 브랜드(브랜딩)는 굳이 힘들게 할 필요가 없어. 브랜드는 길바닥에서 줍는거야’라고 말한다.

일상적 사물(포장)이 예술(브랜드)이 되었을 때 이것이 ‘발견된 오브제’라는 것이다. 이 길바닥에서 우연히 ‘발견된 오브제’로서의 패키지가 바로 ‘바나나맛 우유’의 용기, ‘프링글스’의 튜브, ‘Toblerone’ 초콜릿의 삼각 바, ‘Toilet Duck’ 세제의 오리 모가지, ‘카페라떼’의 컵에 해당된다.

그러니까 이것들은 브랜드를 만들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했다기 보다는 세상에 널려있는 것(사물)들을 주워서 하고 보니 브랜드(예술)가 되어버린 경우라고 볼 수 있다.

스낵 브랜드의 아이콘이 된 ‘맛동산’의 끈 또한 우연히 ‘발견된 오브제’이다. 1975년에 필자가 해태제과에 입사할 때 태어난 맛동산은 처음에 수동포장이었다. 이미 만들어진 봉지에 맛동산을 손으로 한 삽씩 퍼 담아 쌀자루 묶듯 끈으로 묶었다. 성공여부가 불확실한 상품의 도입기에 포장기를 투자하지 않고 상품화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었다.

매출이 늘자 생산이 자동화 되고 월 60억원까지 올라가는 대형브랜드로 발전하자 생산성과 원가절감을 내세워 맛동산의 끈을 없애자는 관계부서의 의견이 포장개발부를 압박해 왔으나 필자는 중요한 제품이니 서두르지 말라며 막연히 버티곤 했다.

시간이 가면서 빼고 싶어도 뺄 수 없는 아이콘 이상의 그 뭔가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그 뭔가가 바로 브랜드라는 것을.

글을 읽지 못하는 세 살짜리 조카에게 돈을 주고 맛동산을 사오라고 시켜보라. 전혀 문제없이 혼자서 맛동산 한 봉지를 들고 가 값을 치를 것이다.

프링글스의 튜브와 같이 맛동산의 끈은 브랜드를 지시하는 강력한 기호로서 비주얼 단서가(Cue driver) 된다. 눈이 어두운 노인들도 마찬가지로 글씨를 읽지 않고 그림 또는 형태를 읽기 때문에 맛동산과 같은 상품은 어려움 없이 쇼핑을 할 수 있다. 일반 성인들도 마찬가지다.

4만여 SKU(Stock Keeping Unit)가 있는 오늘날의 쇼핑매장에서 소비자들은 시간에 쫓기며 쇼핑을 하고 또 쉬 피로를 느끼고 지루해 한다. 그들은 거의 무의식 상태에서 상품 카테고리를 스캔하듯 하면서 쇼핑을 한다. 연속적으로 트래킹하면서 모든 상품을 비디오처럼 보는 것이 아니라 주변환경을 일련의 스냅사진을 찍듯이 인지하면서 흥미 있거나 관련이 있는 다음 장면으로 건너뛰는 것이다.

끈을 풀어버린 맛동산(위), 오리지널 맛동산(아래 왼쪽), 디자인이 바뀐 최근의 맛동산(오른쪽)

그 과정에서 맛동산은 그림에서와 같이 돌출효과가 있다. 누에고치 모양이 유일할 뿐만 아니라 스낵 카테고리에서 다른 스낵들의 포장이 모두 동일하기 때문에 돌출되어 보이는 것이다.

또 하나의 그림은 우리 눈의 이동을 보여준다. 그림의 왼쪽과 같이 돌출요소가 있을 때 눈은 지체 없이 이동하지만 돌출요소 없이 차별적 요소만 있을 때는 오른쪽과 같이 초기 탐색시간이 많이 지체(가운데 원이 짙음)되고 여러 번의 안구운동이 필요해 진다.

von Restorff 효과(Source: Murray, 1995).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은 불분명하게 인식되는 대상물 보다는 구체적이고 익숙하게 아는 대상에 주의를 기울인다. Aldous Huxley는 본다고 하는 것을 감각(sensing) + 선택(selecting) + 지각(perceiving) = 보기(seeing)로 정리했다(Lester 1995).

끈을 묶은 맛동산은 이미 알고 있다는 내부요인으로서의 지각(Perceiving)과 돌출되는 외부요인인 감각(Sensing) 둘 다 가지고 있어 쉽게 선택(Selecting)적으로 인지된다.

“사람들은 불분명하게 인식되는 대상물 보다는 구체적이고 익숙하게 아는 대상에 주의를 기울인다. Aldous Huxley는 본다고 하는 것을 감각(sensing) + 선택(selecting) + 지각(perceiving) = 보기(seeing)로 정리했다(Lester 1995). 끈을 묶은 맛동산은 이미 알고 있다는 내부요인으로서의 지각(Perceiving)과 돌출되는 외부요인인 감각(Sensing) 둘 다 가지고 있어 쉽게 선택(Selecting)적으로 인지된다.”

헉슬리는 그것을 다른 것으로부터의 고립시킴이라고 표현한다. 한 브랜드가 가진 자산은 제품 카테고리에서 현저성이 뛰어나고 풍부한 연상이미지를 보유하며 기억속에서 쉽게 인출되는 언어적인 네임이나 시각적인 비주얼이미지를 가지고 있다(Biel, 1993).

Zaltman(2003)에 의하면 특정 카테고리 정보에 대한 소비자의 회상(Recall)과 재인(Recognition) 단서(Cue)는 정보의 인출과 관련되며 소비자의 판단과 의사결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므로 외현기억(Explicit memory)과 암묵기억(Implicit memory)은 소비자의 사고와 행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끈이 없는 맛동산과 끈이 있는 맛동산은 과자 맛이 다르다. 포장에 의하여 감각전이(Sensation preference)라는 편견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Gladwell(2005)이 말하는 장막효과가 있다.

워싱턴 D.C.의 국립교향악단 오디션을 하는데 연주를 하는 사람의 성별에 대한 편견이 연주내용에 전이되어 왜곡 되었던 결과가 연주자 앞에 장막을 침으로서 다른(공정한)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이는 편견이 없는 상태에서 펩시콜라맛의 우월성을 증명하고자 레이블이 없는 소다수 병에 코카콜라와 펩시콜라를 각각 넣고 맛 비교를 했던 펩시 찰렌지와 같은 맥락이지만 콜라를 병을 빼고 팔자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브랜드야 말로 선입관과 오만과 편견의 덩어리다.

맛동산의 끈은 소비자 머릿속에 끈 - 보따리 - 옛날 - 먹거리 - 저렴 - 풍족 - 가족 - 파티 등을 기억하는 뇌 구석구석의 뇌세포들을 연결하는 시냅스를 점화시키는 발화장치다.

돌출요소에 따른 탐색시간 증가(Source: Zelinsky and Sheinberg, 1995).

거대한 용량의 집적회로인 뇌는 연결회로를 스스로 만들고 저장하고 꺼내 쓰는 소프트웨어인 동시에 하드웨어다. 눈은 입력장치다. 친숙한 브랜드를 보면 순간적으로 미세한 피부전도반응(Skin conductance)이 일어난다.

영국의 포장연구기관인 Faraday Packaging Partnership은 EEG(뇌파측정)이나 EMG(안면근전도측정) 또는 fMRI(뇌단층촬영)를 이용하여 포장된 상품에 대한 소비자의 뇌 속의 생각 즉, 회로를 읽어보려고 연구 중이다. 해태는 32년 동안 소비자 머릿속에 맛동산이라는 굵은 회로를 만들어 놓고 그 회로를 스스로 끊어버렸다.

맛동산 포장에 락樂자를 넣고 락마케팅을 한다고 들었다. 마케팅 활동이 단기적 전술이라면 브랜딩은 장기적 전략에 해당한다. 일회성 마케팅에 브랜드가 희생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요즘 맛동산의 매출이 뚝 떨어졌다고 한다.

제품광고는 비아그라고 브랜드 광고는 보약이라는 말이 있다. 일회성과 지속성을 빗댄 말이다. 특정부위만 너무 즐기면 몸이 병이 난다. 하버드대의 마케팅 교수인 잘트만이 오늘날의 환경변화에 따른 마케팅의 불확실성에 대고 한 농담이 있다.

“제품광고는 비아그라고 브랜드 광고는 보약이라는 말이 있다. 일회성과 지속성을 빗댄 말이다. 특정부위만 너무 즐기면 몸이 병이 난다. 하버드대의 마케팅 교수인 잘트만이 오늘날의 환경변화에 따른 마케팅의 불확실성에 대고 한 농담이 있다.”

주정뱅이가 가로등 밑에서 잃어버린 안경을 열심히 찾고 있었다. 지나가던 행인이 어디서 잃어버렸냐고 묻자 저쪽 어둠 속을 가리킨다. 행인이 그럼 잃어버린 곳에서 찾지 않고 왜 여기서 찾느냐고 묻자 주정뱅이 왈 ‘가로등이 여기만 비추니까 그렇지요.’

환하게 알고 있는 표층적인 마케팅 환경에서 문제를 찾지 말고 보이지 않는 심층적인 조사를 해볼 필요가 있다. 눈이 나쁜 동물, 해태가 잃어버린 안경은 지금 어둠 속에 있지 않은가.

References
금동호 김성민 옮김. PM 레스터(1996), “비주얼 커뮤니케이션”, 나남출판. P. 29.
노규형 옮김, 제럴드 잘트먼 지음(2004), “How customers think” 21세기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