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장에 있어서 포장의 빛깔은 정서적으로 매우 강한 잠재력을 가진다고 식자들은 말한다. 어느 연구 발표에 의하면 가령 예를 들어 어느 한 고객이 어느 한 포장된 상품을 보는 순간 눈동자의 동공이 변하고 반사 신경의 반응과 심장의 고동 등이 달라지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포장색채는 고객에게 가장 빠르고 영향력이 큰 반응을 전해준다고 한다.

색채가 전하는 의사전달은 매우 확고하기 때문에 어떠한 음성이나 이성(理性)이나 혹은 법의 제약으로도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쓰이는 언어 혹은 그림은 때에 따라 조정할 수 있지만 색깔은 그렇지 않다는 뜻이다.

작금 한국, 중국, 일본 세 나라 사이에 김치 전쟁이 뜨겁게 일어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일본 내의 중대도시 중심가에 자리 잡고 있는 식품점 진열장에는 으레 비닐포장의 김치봉지가 진열되어 있어서 우리들의 시선을 끌어당긴다.

김치의 원조라고 하면 두말할 것 없이 우리나라겠지만 요즘 같이 치열한 경쟁 속에서는 그저 맛 좋고 품질 좋고 잘 팔리면 그만이지 꼭 원산지를 따져서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하고 점포주인은 이 점을 강조하고 있다. 말인 즉 맞는 말이다. 사실 옳게 말해서 맛이 좋고 나쁘고 혹은 김치 내용의 가부 판단은 김치 한 봉지를 사서 포장봉지를 뜯어서 직접 음미하기 전에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러한 판단을 하기 이전에 고객으로 하여금 아름답게 포장된 김치에 마음이 끌려서 김치 한 봉지를 구입하는 순서가 전제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아무리 훌륭한 김치라 하더라도 포장상태가 고객의 구매충동을 일으키지 못할 때에는 빛을 보는 기회조차도 가지지 못한다는 뜻이다.

김치의 맛은 직접 먹어보기 전에는 판단이 불가능하다. 지금은 옛날같이 포장봉지를 뜯어서 조금만 끄어내서 시식을 해보겠다고 해도 허용되는 세상이 아니다. 포장물 표면에 그려진 그림이 고객의 미각을 자극하여 구매충동을 일으킬 정도로 잘 그려져 있지 않다면 이 김치 포장은 실패할 확률이 높다.

포기김치를 담을 때 여기에 쓰인 배추, 고춧가루, 마늘 같은 각종 양념 그리고 소금 등의 성분 명세가 동일하다고 해서 맛이 같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김치를 구입하고자 할 때 고객은 부득불 어느 나라에서 누가 언제 생산한 것이냐 하는 것을 따지게 마련이다.

출하에 앞서 김치 겉포장에 싱싱하고 먹음직스런 김치 한 포기의 그림 준비가 뺄 수 없는 필수요건이다. 고객에게 주는 이 그림의 이른바 커뮤니케이션은 결코 과소평가될 수 없다.

포장에 그려진 도안과 그림은 상업미술 분야에서 다루어져야할 문제이다. 음악이 시간의 예술이라고 한다면 미술은 공간의 예술이라고 식자들은 말하고 있다.

즉 음악은 청각을 그리고 미술은 시각을 통해서 전달된다는 뜻이다. 여러 가지 단음(單音)이 하나로 모아져서 아름다운 협화음(協和音)을 이루는 것 같이 미술에 있어서도 여러 단색(單色)이 모아져서 보기 좋은 이른바 협화색조(協和色調)를 만들어 낸다고 하는 이치이다. 이와 같이 고객에게 주는 포장색조의 메시지는 힘이 있으면서 복잡한 구조이다.

색, 빛, 색채, 색깔, 빛깔 같이 우리는 매우 풍부한 낱말을 가지고 있고 또 빛깔의 은은함과 강열(强烈)함을 나타날 때 색조(色調)라는 단어로 표현한다. 포장과 빛깔을 말할 때 우리들은 생리적, 문화적, 그리고 연상(聯想)이라고 하는 세 가지 측면에서 고려되어야 한다고 앞에서 언급한 “파브레”씨는 강조하고 다음과 같이 풀이를 하고 있다.

첫째, 빛의 작용을 생리학적으로 고찰한다는 말은 우리로선 매우 차원이 높은 난해한 부분이다. 둘째, 문화적 측면이라 함은 오랜 세월 동안 우리가 몸담고 있는 이 사회에서 경험한 갖가지 색채의 집대성을 뜻한다. 셋째, 연상이라 함은 장기간에 걸친 이름난 상품의 포장색깔에서 은연중 우리들의 눈의 망막(網膜)에 박힌 영상을 뜻한다.

한 예로 장구한 세월에 걸쳐 우리가 먹어온 김치는 오늘날 확고부동한 색채영역을 가지고 있어서 좀처럼 바꿔지지 않는다. 아무리 맛이 좋은 김치라 하더라도 이 색채 영역을 벗어나서는 외면당할 것은 분명하다.

같은 맥락에서 오늘날 서구사회에 있어서 “마아가린”이라고 하면 으레 노랑색 상자에 포장되어 있으며 또 점포에 노랑색 필름갑(匣) 비슷할 것이 진열되어 있으면 연상반응으로 즉각 “코닥”필름을 생각하게 된다고 한다. 이러한 경우 이 노랑색은 영원히 바꿀 수 없을 것이라고 전문가는 말한다.

색채감각을 생리학적으로 풀어보면 매우 흥미로운 현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가령 예를 들어 온통 붉은 빛으로 조명된 방안으로 갑자기 들어가면 맥박이 빨라지고, 반대로 초록빛 실내로 들어가면 맥박이 느려진다고 한다. 그리고 하늘색은 적막을 느끼게 하고, 노랑색은 사람의 시선을 끄는 일에는 성공하였지만 그렇다고 반드시 사람의 기분을 좋게 한다는 뜻은 아니다. 이러한 현상은 간혹 궤도를 벗어나는 경우가 있어서 보편성이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오늘날 포장색상을 포함한 포장컨설컨트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매우 다양한 실험 장비를 구비하고 있다. 한 예로 제2차 세계대전 때 영국 방공부대가 사용한 특수 관측기구를 가지고 색상 대 인간의 반응을 연구하고 있다. 가령 예를 들어 눈동자의 움직임과 동공의 크기의 변화, 인체에 있어서의 땀구멍의 반응과 땀의 분비량, 호흡의 변화와 목구멍의 긴장도, 뇌파(腦波)의 파형과 그 밖에 신경계통에서 일어나는 전기화학적 반응 등을 탐색하고 있다.

어느 시장 판매대에 처음으로 등장한 신상품의 포장이 고객의 눈길을 끌었다고 하더라도 첫 번째 볼 때와 두 번째, 세 번째 볼 때의 반응이 틀리게 나타나는 현상은 더 많은 연구를 필요로 한다.

이것뿐만 아니라 색채에 대한 인체의 반응과 행동사이에도 적잖은 괴리가 있는 것도 극복해야 할 과제이다. 이러한 일련의 연구가 끝날 때에는 상품에 대한 고객이 가지는 구매충동의 실상이 한층 소상히 밝혀질 것이고 더 이상 더듬거리거나 방황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전문가는 말하고 있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누구나 색상과 색조에 대하여 고유의 생각을 가진다고 알려져 있다. 예를 들어 점포에 들려서 예쁘게 포장된 베이컨 1㎏ 혹은 새우젓 한 병을 구입하려고 할 때 고객이 발산하는 땀의 분량과 뇌파의 변화를 아직은 구명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첨단장비가 갖추어지는 날에는 아마도 포장설계부문에서 획기적인 전기가 마련될 것이 분명하다.

포장이 가지는 본질적인 사명은 두말할 것도 없이 상품을 생산지점에서 이른바 공해공간을 관통하여 최종 소비지점까지 아무 탈 없이 보호함에 있다. 그 중간에 팔고 사는 과정이 있어서 사태를 어렵고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때로는 소비지점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다가 사라지는 경우도 왕왕 발생한다. 만의 하나라도 그 사태가 포장 탓이라고 한다면 포장 담당자에게는 큰 낭패일 수밖에 없다.

우리주변에서 목격하는 수많은 색깔 중에서 몇몇은 비교적 소상하게 알려지고 있다. 가령 예를 들어 진한 붉은색은 타는 듯한 정열과 피의 바다를 연상케 하고, 녹색은 곡식이 풍부한 들판을, 하늘색은 쾌청한 날씨를 머리에 떠오르게 한다. 그리고 사람의 시선을 끌고 마음을 초조하게 만드는 진황색(眞黃色)은 이글거리는 태양을 뜻하고 있다. 인류는 오랜 역사 속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색채의 변화에 대하여 민감하게 대응하였으며 나름대로 갖가지 의미를 부여하여 왔다.

흑색은 온통 암흑으로 가득 차 있으며 절망과 죽음을 연상케 할 뿐만 아니라 속에 감추어진 진상을 꿰뚫어 볼 수 없는 심오함을 가지고 있다. 앞날의 영원한 침묵 또는 미래의 실날 같은 희망조차도 바라볼 수 없는 말하자면 공허함을 뜻한다. 검은색은 다른 색채와의 타협이 없으며 오로지 자신의 특수성만을 고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은색이 광채를 발할 때에는 존엄과 우아함과 동시에 다른 색깔과의 구별을 강조하고 있다.

오늘날 많은 서구 사람들의 생각 속에는 검정색이 매우 사치스럽게 느끼는 한편 매우 애처롭게 느낀다고 한다. 사자(死者)를 태우고 강제로 떠나는 리무진 장의차는 하나같이 윤기 흐르는 검은색이지만 선물용 초코렛 상자의 색깔은 광채나는 검은색으로는 안된다.

국제시각연구소(國際視覺硏究所 The visual research international U.S.A.)가 1987년도에 발표한 한 논문에서 빛깔과 인간과의 관계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오렌지색은 일몰시의 추억을 나타내며 따라서 활기와 넘치는 힘과 고무를 뜻한다. 색채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며 뜻을 담고 있다. 뜻을 전달하고 암시하고 그리고 무엇인가를 연상케 하고 감정을 일으켜서 추억을 더듬게 한다.

흑색은 꽉 들어찬 아픔을 나타내며 죽음과 절망을 뜻한다. 그리고 한치 앞을 볼 수 없으며 최소의 가능성도 보이지 않는다. 다만 미래가 없는 정적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흑색은 다른 빛깔과의 구별이 확실하며 특히 눈부신 흑색은 우아함과 고상함을 지닌다.

백색은 순수함을 나타내며 접근하기 힘들고 설명하기 어려운 엄숙함을 표시한다. 이것이 없으면 공허함과 무한함이 있을 뿐이다. 백색은 우리 마음에 무한한 정적(靜寂)을 주는 색상이다. 그러나 그것은 죽음의 고요함이 아니고 살아 숨쉬는 정적이다.

청색에 접근할 때에는 신선함과 영원히 썩지 않는 그 무엇인가를 느끼게 한다. 회색은 백색 같은 가능성이나 흑색 같은 복종이 없는 중성상태이며 확고한 의지도 없고 우유부단하며 에너지가 빠져나간 것 같은 공허의 상태를 뜻한다. 회색이 가지는 창백함에는 공포와 노쇠와 사망에 접근함을 나타낸다. 어두컴컴한 회색의 그늘이 덮칠 때 공포와 단조로움과 억압의 유혹이 손짓한다. 그러나 서구사람의 감각에는 부드러움을 상징한다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녹색은 가장 조용한 색채이다. 녹색은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도 않으며 환희나 슬픔이나 애정을 나타내는 일도 없다. 사람이 노력하고 그에 대한 대가를 빠짐없이 챙기는 적막(寂寞)한 가운데에서 만족하는 중류층의 사회와 같은 세상이 녹색이다.

자연이 온통 녹색으로 변하면 새로운 희망이 우리 삶에 깃든다고 하여 이것을 녹색희망(Green hope)이라고 일컫는다. 여기에 노랑색을 첨가하면 힘차게 솟아오르는 눈부신 태양을 연상케 한다. 만약 여기에 청색을 섞으면 우리를 깊은 생각에 잠기게 한다. 녹색은 본질적으로 진하든 연하든 간에 냉담하고 조용함을 나타낸다.

적색은 강력한 힘과 활기 그리고 남성다움과 역동성을 나타낸다. 동시에 적색은 잔인함과 기고만장함 그리고 방약무인(傍若無人)함을 나타낸다. 또 가혹하고 엄격하고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자비로우며 매력적인 일면도 가지고 있다. 적색은 본질적으로 열렬하고 활기 넘치고 그리고 따뜻함을 나타내지만 때로는 자신을 낭비하는 황색하고는 타협한다. 에너지가 넘치고 강인함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적색은 너그럽고 거역할 수 없는 포용력을 가지고 언제나 마지막 목적을 의식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시선을 끄는데 부족함이 없다.

진홍색은 강렬하고 동적이며 열렬한 소망을 담고 있다. 그래서 우리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마음을 사로잡는다. 우리들이 강한 힘, 온화함, 능률, 그리고 열성을 나타낼 때 또는 우리들의 소유물을 지킬 때 이 빨강색 계통을 쓴다.

진분홍색은 이것보다 더 예민하게 우리에게 다가온다. 결론으로 빨강색은 진하면 진할수록 심각하게 깊이 빨려 들어가고 문제점이 많아지며 옅을수록 보다 행복하여지고 즐거운 상상에 잠긴다.

핑크색이라고 하면 패랭이꽃 빛깔 분홍색을 말한다. 이 빛깔은 본시 부끄러움과 달콤함과 낭만적인 부드러움을 간직하고 있다. 역동적이지는 못하지만 여성적이며 애정을 나타낸다. 그리고 선량함과 친근함을 뜻한다.
갈색은 모든 색상 중에서 가장 실용적이며 간결함과 근면함을 담고 있다. 거기에는 잔인하다거나 상스럽다거나 하는 일이 없고 건전한 삶과 매일의 노동을 뜻한다. 이 색깔은 진할수록 흑색에서 파생한 것 같은 느낌을 가지게 한다.

오렌지색은 적색보다 더 강렬하게 빛을 발산하고 있으며 그 만큼 빛의 메시지도 강력하다. 그리고 진실만을 위하여 속으로부터 도전하는 행동하는 색상이다. 그뿐만 아니라 감수성이 예민하고 따뜻함이 있으며 마치 타오르는 불꽃같은 친근감을 느끼게 한다. 그것은 관용과 동시에 강한 감정의 흐름과 같은 것이다.

청색은 여성적이며 편안한 곳에서 쉬는 요정과 같이 깊이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색상이다. 이 청색은 성인들이 선호하는 색상이다. 성숙함을 나타내는 동시에 어릴 때를 회상케 한다. 그리고 내면적이고 깊이 있는 정신적 생활을 연상케 한다. 적색과 같은 낭비를 원치 않으나 격정을 억누르고 잔잔한 흐름과 같은 사랑을 거머쥐기를 바라는 색상이다. 조용하면서 현세에서 만족하고 쉬고 있는 것 같은 녹색과는 확실히 다르다.

청색의 깊이는 천체의 무게만큼이나 우리를 압도하고 있으며 그곳에서는 이성(理性)이 무시된다. 청색은 진할수록 우리를 끝없이 심연에 빨려 들어가게 하지만 옅은 청색은 보다 덜 충격적이며 무관심과 공허를 뜻하며 꿈을 꾸게 한다. 그리고 여기에 백색을 곁들이면 신선함과 청결함이 더해진다.

노랑색은 모든 색채 중에서 가장 강하게 빛을 발산한다. 그것은 젊음과 지칠 줄 모르는 활기 그리고 외향성(外向性)을 상징한다. 옅은 색조에서 특히 이것이 분명하지만 청색과 같은 심오함은 없다.

황금색은 능동적임을 나타내는 반면 녹색을 첨가한 노랑색은 권태로움을 의미한다. 여기에 다시 약간의 적색을 띄게 하면 눈을 즐겁게 하고 우리 마음을 추수 때의 넉넉함을 연상케 한다. 찬란한 황금빛은 모든 물체를 크게 보이게 한다.

자색(紫色 Violet)만큼 신비스러운 색채도 없을 것이다. 그것은 명상적이며 비밀에 싸인 생각을 뜻한다.


이종각 회장 / LEEPA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