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포장의 불가피성과 유용성 그리고 그것이 가져다주는 혜택에 관하여 횡설수설 여러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공짜는 없는 법이다. 포장의 역할을 다하고 무참히 버려졌을 때 쓰레기로 전락하고 그 뒤처리를 놓고 만만찮은 도전에 직면함은 우리가 모두 익히 아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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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장쓰레기를 한곳에 모으고 쓸만한 것은 골라서 다시 쓰고 나머지는 재생(再生, Recycling)에 돌리는 일에 있어서 오늘날 독일을 능가하는 나라는 없을 것이다. 이 나라의 쓰레기 정책을 훑어보면 철두철미 씨 뿌린 사람이 거두어들이는 방식이다.

그렇다면 씨 부린 자는 누구냐? 말할 것도 없이 생산을 주도한 사람과 그 일당들이다. 아름다운 독일의 국토보전을 위하여 부득이한 조치라고 누누이 설명하고 어기면 높은 벌과금을 매겨서 관계당국은 엄하게 다스린다.

이 때에 대기업들은 순응하였으나 중소기업은 난색을 표하였다. 이와 같은 나라의 큰일은 모두가 합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기에 궁리 끝에 중소기업은 몇몇 업체들이 그룹을 짜서 그 그룹에 속하는 상품의 포장에는 식별하기 쉽도록 공통되는 표식(mark)을 하고 그 표식이 있는 제품은 내남 가릴 것 없이 함께 수집하기로 약속하고 목하 이 제도를 이행하고 있다고 한다.

독일 업자들의 일사불란한 행동에 아무래도 미심쩍은 감이 들어서 그 포장 쓰레기의 수집에 쓰일 비용을 제품 값에 슬쩍 붙인 것이 아니냐하고 물어 보았더니 표면상으로는 펄쩍뛰고 있지만 과연 그럴지는 두고 볼 일이다.

내가 물어본 질문의 주된 목적은 이 시점에서 우리나라 업체에게 동일한 요구를 했을 때 독일 사람들 같이 할 수 있을까하는 데에 있다. 몇몇 중소기업들이 공동으로 포장폐기물의 뒤처리를 하는 제도를 복수방식을 DS 또는 DSD(Dual System)이라고 일컬으며 오늘날 유럽 여러 나라에서 그 영역을 넓혀나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유럽의 여러 나라가 목하 환경단체와 관계당국의 엄격한 감시 속에서 DS의 성공과 문제점을 연구하고 있다고 알려지고 있다.

19.

오늘날 이 지구촌에 살면서 비단 포장폐기물에 국한하지 않고 무슨 일이던 간에 문제를 일으킨 사람이 그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이치를 환경용어로 광역생산자책임(Extended producer responsibility, EPR)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장차 언젠가는 개개인에 이르기까지 이에 순응해야 살기 좋은 지구촌이 되리라고 믿고 있다.

독일의 아저씨들 보다 아주머니들이 쓰레기 뒷처리에 관한한 더 엄격하다고 한다. 개인주택, 아파트 할 것 없이 동내 요소요소에 플라스틱으로 만든 쓰레기통 7가지를 비치하고 하나하나에 쓰레기를 선별하여 버려야 한다.

그 쓰레기통에는 아래와 같은 표식이 붙어 있어서 엄격히 지켜지기를 열망하고 있다. 만에 하나라도 틀리게 버려졌을 때는 쓰레기 청소부가 수거를 거부할 뿐만 아니라 벌칙이 가해진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이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상당한 지식이 필요함은 물론이다.

이런 일을 돕기 위하여 각종 포장물에는 그것에 상응하는 번호와 품질명이 법으로 정해져 있어서 그 번호에 일치하는 쓰레기통에 정확하게 버려야 한다.

(1) PETE -- PET(폴리에틸렌 테레프탈레이트)
(2) HDPE -- 고밀도폴리에틸렌
(3) V -- PVC(폴리비닐클로라이드)
(4) LDPE -- 저밀도폴리에틸렌
(5) PP -- 폴리프로필렌
(6) PS -- 폴리스틸렌
(7) OTHER -- 기타

플라스틱 제품의 선별이 가장 어렵다. 과거에는 이런 제도가 없었으니 옛날에 만들어진 상품의 폐기물은 어느 통에 버릴 것인가 망설여진다. 귀찮다고 아무 통에나 버리다가 재수 없게 지적당하면 벌칙을 감수할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상당기간 쓰레기 수거를 거부하면 그것이 얼마나 호된 벌인가 상상하고도 남음이 있다. 이러한 제도의 취지가 어디에 있는가를 인식한다면 불평을 토로할 수도 없는 일이다. 앞으로 지구촌에 살면서 쓰레기 뒷처리를 잘하는 나라부터 일등국민이라고 주장하는 환경당국의 말이 노상 빈말이라고 할 수는 없다.

현재 미국 EPA(Environmental Protection Agency)가 발표한 미국의 쓰레기에 관한 현황은 다음과 같다.


집안에서 발생하는 각종 쓰레기를 버릴 때에 해당 쓰레기통을 찾아서 적재적소에 차질 없이 폐기하기란 말과 같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해당 폐기물에 표식이 없거나 있어도 희미하게 지워져 있을 때에 이것을 틀림없이 처리하는 것은 오로지 일등국민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환경전문가들은 말하고 있다.

이것을 훌륭하게 해내기 위해서는 우선 PE(폴리에틸렌), PP(폴리프로필렌), PVC(폴리염화비닐) 또는 경질PVC와 PET 재질을 만져보고 식별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노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특히 HDPE와 LDPE를 만져보고 식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오늘날 이른바 선진공업국 국민이라고 해서 모두가 잘 알고 있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집안에서 발생한 생활쓰레기를 한 아름 가지고 7가지 쓰레기통 앞에 가서 폐기물을 하나씩 선별하여 해당 쓰레기통에 차질 없이 넣으면 그 폐기물은 리사이클 측면에서 상당한 가치를 지니게 되어 그 이익은 반사적으로 우리에게 돌아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간혹 이것인지 저것인지 식별이 안 될 때에는 차라리 7번 기타쓰레기통에 넣도록 규정하고 있다. 만에 하나라도 선별이 귀찮다고 모두 7번 통에 넣으면 그 만큼 손해가 되는 것은 물론이다. 7번 기타쓰레기는 한곳에 모아져서 연소가 가능한 것은 소각장으로 보내진다.

거기서 포장폐기물은 연소되어 한줌의 에너지를 남기고 재가 되어 승천하고 일생을 마감한다. 타지 않는 쓰레기는 매립장으로 보내져서 땅에 묻혀 한줌의 흙으로 영영 사라진다.

1991년 현재의 각 나라가 소각한 쓰레기의 분량은 다음과 같다.

국 가 소각된 쓰레기의 분량
스위스 74%
일 본 66%
스웨덴 50%
프랑스 35%
미 국 15%
(Packaging for the Environment에서 옮겼음 1991년)

이 통계수치에서 보는 바와 같이 스위스와 미국은 상반되는 대조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매사를 합리적으로 처리하는 스위스와 부자나라 미국의 생각이 꼭 같을 수는 없다.

미국은 에너지의 회수보다는 오히려 공기오염에 더 큰 비중을 둔 느낌이 든다. 우리나라 사정은 과연 이들 나라 중에서 어느 쪽에 가까운지 생각해 볼 일이다.

20.

발생하는 포장폐기물을 막을 수는 없겠지만 이것을 지혜롭게 대처하는 것은 인간의 몫이다. 오늘날 구미 선진공업국에서는 포장폐기물의 뒷처리에 대하여 4R운동을 부르짖고 있다.

Reduce (포장자재를 줄이자)
Reuse (포장폐기물을 다시 쓰자)
Recycle (포장폐기물을 재생하자)
Recover (포장폐기물에서 에너지를 뽑자)

이것을 조금 부연하면, 첫째 포장에 관한 기본적인 기능을 구비하면서 될 수 있는데로 포장자재를 줄여보자. 둘째 이것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가능하다면 포장폐기물을 잘 손질해서 다시 쓰자. 여기에는 지구상의 자원에 대한 인간의 겸손한 자세가 필요하다.

가령 예를 들어 어느 유명한 화장품이라 할지라도 명성에 사로잡히지 말고 대오각성해서 비어있는 용기를 화장품 매장에 가지고 가서 내용물만 구매해서 용기에 담아오는 이른바 재사용(Refill) 하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해서 구입한 화장품의 품위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의 마음이 어디 그런가.

오래전에 일본에서 으뜸으로 손꼽히는 화장품회사 ‘시세이도(資生堂)’가 각 백화점 매장에서 이 방법을 시도하다가 보기 좋게 실패로 끝난 기록이 있다. 셋째 이 방법이 불가능하다면 버려진 포장물을 알뜰히 선별하고 손질해서 자원으로 쓰는 말하자만 재생(Recycle)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것도 저것도 할 수 없는 잡동사니 폐기물이라면 연소시켜서 발생하는 열을 회수해서 소중한 자원을 버리는 일없이 알뜰하게 쓰자는 움직임이 4R운동이다.

21.

오늘날 포장만능시대에 살면서 포장의 위력이 어찌나 가력한지 사람이 포장을 제어한다고 말하기 보다는 그 반대인 표현이 옳은 것 같다. 이렇게 말하면 어느 포장전문 장인은 인간이 포장을 알기보다는 더 많을 것을 포장이 사람을 알고 있다고 맞장구를 친다.

어느 유럽포장전문가의 말을 빌리면 포장이 빠진 현대문화는 마치 계란 없이 닭을 바라는 것과 같다고 한술 더 뜨고 있다. 이 말이 믿어지지 않으면 포장전문가 혹은 포장 전문서적을 찾기보다는 포장의 현장으로 곧바로 나가서 직접 눈으로 보는 것이 지름길이다.

가령 예를 들어 대형 슈퍼마켓(Super market) 혹은 이것과 유사한 이른바 편의점(便宜店, Convenience store) 또는 할인점(割引店, Discount store)이라고 불리는 말하자면 다가오는 새로운 사회질서에 적응하기 위한 신형점포들 또는 생산자가 중간유통마진 없이 직접 소비자에게 창고내에서 공급하는 이른바 창고 때기 직거래 방식(Warehouse club)을 찾아가서 장바구니 손수레를 밀고 포장상품이 꽉 들어찬 매장 내를 이리저리 30분만 돌아다니면 3만 가지가 넘는 포장상품에 접하게 된다고 말한다.

그것도 그럴 것이 이를 점포에 상품구색을 갖추기 위해서는 그 면적이 최소한 3천평은 넘어야 손익분기점을 넘길 수 있다고 전문가는 말하고 있다. 대게 이름있는 점포는 이것의 3~4배는 되리라고 하는 것이 중론이다.

매장에 진열된 상품 중에는 어린이용 장난감, 자전거, 야채, 자동차용 타이어 등 몇 가지를 제외하면 모든 상품이 철저하게 포장되어 있어서 가격 말고는 짐작조차도 할 수 없다. 굳이 내용물을 보고 싶다면 하나를 구입해서 포장을 뜯어 볼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자사제품을 하나라도 더 팔아보겠다고 겉포장에 쓰여 있는 부풀린 선전용 글귀와 그려진 도안 그리고 지나친 과대포장(過大包裝), 과도한 다중포장(多重包裝)을 놓고 생산자의 상혼(商魂)을 나무랄 생각은 없다. 나 스스로 재삼 강조하려니와 이 나라 포장장인(包裝匠人) 만이라도 눈을 크게 뜨고 세상의 진운(進運)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우리보다 앞서가는 독일과 일본에서 4R운동이 일어나는 것을 배워야 한다. 오늘날 포장을 위하여 그렇게 흥청망청 소비할 자원도 없으려니와 그 포장폐기물을 처리할 땅도 우리에게는 부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서 아직도 포장의 역기능 보다 순기능이 더 많음을 부인할 수 없다. 오늘날 포장을 제외한 우리의 삶을 생각할 수 없으며 그것은 마치 계란을 빼고 성계(成鷄)를 논의함과 같다고 식자는 말한다. 지난날 포장의 힘으로 먼 곳까지 식량을 보내어 많은 사람을 굶주림에서 벗어나게 하였으며 장기저장능력은 흉년의 두려움을 경감시켰다.

오늘날 포장에 관하여 많은 부정적인 평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포장은 여전히 우리생활의 일부이며 희망의 대상임이 틀림이 없다. 어디 그뿐인가 모든 산업의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의 삶의 현장이고 엄청난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아무리 역사가 바뀌어도 포장은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나의 확고한 생각이다.


이종각 회장 / LEEPACK
포장이란 무엇인가? (1) 보기
포장이란 무엇인가? (2)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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